[문화의향기]1.아자방
한번 불을 때면 100일 동안 방안에 온기를 품고 있었다는 아자방(亞字房). 하동 칠불사의 선방 중 하나인 아자방은 처음 불을 지폈을 때나 100일 되 는 날에 다시 불을 넣을 때도 일정한 따스함을 간직했다는 전설같은 이야기 가 전해져 온다. 아무리 두꺼운 구들을 깐 온돌방일지
가야)로 보거나, 그 설치 장소를 일본 열도로 보는 등 시각을 달리하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Ⅱ. 본론
1. ‘任那’. 그 개념에 대한 정리.
(1)일본 사료에서의 임나
주로 일본서기에 등장하는 개념으로서 6세기의 한반도 남부 경상남도를 중심으로 한 지역에서 신라나 백제에 복속되어 있지 않은 소
있었다라고 주장한다.
백제군사령부설 - 천관우는 가야사의 복원을 염두에 두면서 일본서기에 대한 비판적 연구를 선행시켰다. 일본서기의 임나관련사료 중 일본이 주체로 묘사되어 있는 것을 백제로 주체를 바꾸면 사리에 맞게 되는 것이 적지 않다고 전제했다. 4세기 말경 왜가 가라칠국을 점
못하였던 것이다
그나마 단편적으로 전해지는 자료 역시 <삼국유사>에 전해지는 <가락국기>처럼 신화적인 형태이거나 <일본서기>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편찬목적 때문에 심하게 왜곡된 모습으로 남아 있어 가야사 복원에 한계가 있는 것이다. 문창로. <가야사연구의 흐름과 교과서 서술 검토>.
가야사와 6세기 이전의 일본 고대사가 불확실하다는 문제점에 의해 확대 해석되는 등 그 실체를 타당하게 보지 못하고 있다.
임나일본부라는 말은 '일본서기'에만 5차례 등장하고 있으며 각 연구자에 따라 임나일본부의 성격과 역할을 바라보는 시각차가 매우 크다. 먼저 일본 학계에서는 임나일본부
Ⅰ. 한국과 일본의 관계(한일관계)와 APII(아시아태평양정보기반)
APII에 대한일본의 대응을 관찰하기 위해서는 우정성과 함께 통산성의 움직임에도 주목해야 한다. 왜냐하면 AII는 우정성의 전관사항(專管事項)이지만 APII는 우정성과 통산성이 동시에 관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술적인 측면에 비중을
가야 제국을 기술 노예로 삼아 철기 문화를 도입하여 통일의 전열을 가다듬었다는,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변설과 함께 몇 가지 왜곡된 사료들을 편취, 때로는 조작하는 범죄적 무리를 가해 가면서까지 입증해 보이려했던 한반도에서의 임나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면 임나에 대한 <일본서기>를
가야 그리고 일본열도의 규슈세력과 야마토정권이 구성하는‘ 한·일 지역세계’의 축이었다. 정효운, 동의대학교 연구논문 「6세기 한일관계사의 재구축-왜와 임나관계의 재해석을 중심으로」, 2008
그 당시 중국은 남, 북조 시대였는데, 남북조란 한족의 송, 제, 양, 진 등의 남조와 유목민족의 북위,
3. 일본의 주장과 그에 대한 반박
(1) 일본서기 (‘日本’이라는 명칭사용에 대해)
<일본서기> 에서는 왜(倭)가 5세기 경 가야 땅에 직할 식민지인 ‘임나일본부’ 를 두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와 같은 황당무계한 임나일본부설에 대해서는 일본 사학자들조차도 사실이 아니라고 부인해 오고 있는
일본부(임나일본부설)의 특징
임나일본부는 임나와 일본과 부의 합성어이다. 임나는 광개토왕비, 삼국사기의 강수전, 진경대사탑비, 한원, 통전(通典)등 한국과 중국의 문헌에서도 확인된 것처럼 가야지역을 가리키는 말임을 알 수 있다.
일본이란 국호는 7세기 이후에나 확인되는 것으로 임나일본